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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작은 통일의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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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작성일 23-08-24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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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독일 통일 4주년 기념식에서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서독의 풍요가 단 4년 만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동독인들이 납득할 때, 그리고 동독인들이 40년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서독인들이 이해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적인 통일이 완성될 것이다.”

콜 총리는 1982년부터 1990년 통일 이전까지는 서독의 총리로 그리고 통일 이후에는 통일 독일의 총리로 1998년까지 재임했던 독일 통일을 이끈 주역이자 산증인이라 할 수 있다. 콜 총리의 연설은 물리적 통일을 넘어 내적 통일을 이루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가늠케 하는 말이다. 40년도 이런데 무려 70년의 시간을 부모 자식을 죽인 원수로 살아온 우리들이 통일 이후 함께 살아야 하는 일이 얼마나 버겁고 힘든 일인가 가히 짐작하게 한다.

통일은 단지 체제나 제도의 통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인간’과 ‘정신’의 문제다. 이를 위해 화해와 치유, 평화와 통합을 위한 통일 준비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체제나 제도의 통합만을 지향하는 통일 준비로는 통일 이후 발생할 수많은 사회적 갈등과 균열의 분출이나 충돌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정한 통일 준비는 체제나 이념, 세대 그리고 계층, 지역 등 다양한 층위에 있는 사람들의 갈등을 치유하고 화해와 협력을 촉진해 내적 통합을 달성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통일은 단지 체제나 제도 혹은 영토적 통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수의 통일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정책 전문가에게만 맡겨서는 안 될 일이다. 통일 이후 우리가 만들 통일 국가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그 국가를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가 통일 준비에 나서야 한다. 통일 준비는 거창한 구호나 선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보다 강건한 민주적 공동체를 만드는 일, 즉 우리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시민으로 길러져야 한다.

민주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길러지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바로 민주시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과 배려의 정신이 내면화돼야 하고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해치는 일체의 부당한 권력에 대해 비판하고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하고 자유와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에 대한 애국심을 가진 시민으로 훈련돼야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리 모두가 인간의 자유와 존엄 그리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성찰적 개인과 비판적 시민, 애국적 국민으로 훈련받고 양성돼야 한다. 독일 통일은 동독 주민들의 민주화에 대한 열기와 통일에 대한 염원에서 시작됐지만 성공적인 독일 통일 25년의 오늘을 만든 원동력은 서독 주민과 서독 정부가 만들어 놓은 민주시민과 민주적 공동체였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성이 통일 준비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먼저 여성들이 인간에 대한 존엄과 배려에 기초한 화해와 협력의 역량을 강화해 민주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 여기서 더 나아가 통일에 대한 무관심층에서 벗어나 작은 통일의 주체가 돼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 선언에서 제시한 작은 통일은 정치, 경제 등 체제나 제도의 통일에 앞서 환경, 민생, 문화 등의 영역에서 실천 가능하고 지속적인 정책 추진을 통해 남북한 주민들의 만남을 촉진하고 남북한 주민의 삶의 질 향상과 내적 통합을 지향한다.

우리 안의 민주적 역량 강화가 통일 준비의 한 축이었다면 작은 통일은 바로 여성이 주도하는 통일 준비의 또 하나의 축이다. 여성들은 그동안 우리 사회의 환경, 민생, 문화 등의 영역에서 주도적인 활동을 해왔을 뿐만 아니라 돌봄의 리더십과 평화 운동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러한 경험과 역량을 토대로 작은 통일의 주체로 다시 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