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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이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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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작성일 23-08-24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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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중요성을 알리는 두 개의 행사가 같은 주간에 열렸다. 위민크로스 DMZ(WomenCrossDMZ, WCD)가 주최한 ‘국제여성평화걷기’와 통일부와 통일준비위원회가 주최한 ‘통일박람회 2015’다. 두 행사의 성격상 사전에 일정을 조정하거나 사전 논의를 했을 리는 만무한 상황에서 우연치곤 참 특별한 우연이었다. 물론 이것은 세계 평화와 군축을 위한 여성의 날인 5월 24일과 5월 마지막 주로 지정된 통일교육 주간이 합쳐져 만들어낸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 뿐이었다.

미국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과 노벨평화상을 받은 메어리드 코리건매과이어, 리마 보위 등 12개국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여성 30명과 국내 여성 2000여 명이 함께한 ‘국제여성평화걷기’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는 명확하다. 하나는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평화 그 자체가 수단이 돼야 한다는, 즉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해주지 않으며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세계 여성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한 지킴이로 나섰다는 것이다.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여성들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 종단 프로젝트에 참여함으로써 그 자체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었다. 이로서 남북한 여성들의 교류가 단절된 상황에서 세계 여성들이 실낱 같은 교류의 끈을 이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세계 여성들과의 연대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기회가 됐다.

임진각에 모인 수백 명의 여성들이 부른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우리의 소원은 평화’는 우리의 숙명과도 같은 노래다. 두 행사 기관의 우연한 일치에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 또한 다르지 않다. 분단 국가에 사는 우리에게 평화와 통일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느 일방이 없는 평화와 통일은 무의미하고 불가하기 때문이다. ‘국제여성평화걷기’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우리 여성들의 염원을 알렸고 국제사회가 함께 이 꿈에 동참해줄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세계 여성들의 평화걷기는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북한의 정치선전에 이용당해 북한만 이롭게 할 것이라는 비난에서부터 국제위원들의 정치적 성향이나 북한에서의 일정과 발언 등에 대한 왜곡, 그리고 맞불 집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과 균열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물론 이는 충분히 예측했던 결과다. 우리 사회의 통일 논의가 갈등적인 진영 논리에 빠져 있는 한 “김정은의 체제 선동에 이용된 바보 집단”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그렇다. ‘평화’는 평화를 ‘외치는 것만’으로 평화로운 세상으로 바꿀 수도 지킬 수도 없다. 그러나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평화는 평화에 의해서 지켜져야 한다는 진리를 ‘외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생명권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항의한다. “북한의 핵 개발과 정치범 수용소는 왜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그들의 행진으로 북한 정권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로, 인권의 길로 한 발짝이라도 옮겨갔느냐고 오히려 북한 주민의 고통만을 덮어버린 것은 아니냐”고 말이다. 뼈아픈 지적이다. 어찌 보면 항의나 비난이 아닌 피 끓는 호소와도 같다. 또 자식에게 밥 한 끼 먹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한 3만 명의 탈북자의 염원을 토해낸 것이다. 빗방울로 바위 뚫기를 시작한 위민크로스DMZ가 앞으로 안고 가야 할 버거운 숙제이며 위민 크로스 DMZ의 평화행진이 계속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 여성 안에 있다.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와 여성적 가치의 실현을 위한 국제여성평화걷기에 다수의 여성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원인을 단지 보수언론이나 갈등적인 통일논의의 현실 탓으로만 돌리기에는 설득력이 약하다. 그동안 보수와 진보를 떠나 대부분의 우리 여성들은 운동이든 정책 결정 과정이든 통일 논의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생명과 모성적 가치 그리고 젠더적 관점에서 평화와 통일을 잇는 여성주의적 평화통일 논의와 담론들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국제여성평화걷기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여성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잇는 가교 역할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엄혹한 남북관계나 갈등적인 통일논의만을 탓할 것이 아니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생명과 모성적 가치 그리고 여성주의에 기초한 여성주의적 평화통일 담론과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세계 여성들이 남북을 종단하는 위민 크로스 DMZ(WomenCrossDMZ)를 넘어 우리 여성들 안에 가로놓여 있는 장벽을 걷어내기 위한 위민 크로스 위민(WomenCrossWomen)을 추진해야 한다. 북한의 핵개발 위협과 국지전의 위험이 상존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의 폭력적인 언사와 평화를 위협하는 발언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평화를 위한 우리 여성들의 외침이 낭만적이고 공허한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선 생명과 모성적 가치 그리고 치유의 언어로 우리 안의 소통의 공간을 확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