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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준비 1단계, 먼저 온 통일세대와 소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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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작성일 23-08-2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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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여성들과의 대화는 쉬운 듯 어렵다. 같은 언어를 쓴다는 차원에서 만남 그 자체로 대화가 가능하지만 오랜 세월 적대적인 존재로 생각했던 대상과 대화를 한다는 것은 사실상 마음이 편치 않다. 무지와 불신, 오해와 편견, 두려움과 미움과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벽들이 대화는 차치하고 만남 자체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북 여성들과 소통하기는 이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탈북 여성들의 생애 인터뷰를 하다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있다. 조직생활과 생활총화라는 단어다. 북한 주민들은 소년단을 시작으로, 중학교와 대학에서는 사회주의청년동맹, 직장에서는 직업동맹, 농민은 농민근로자동맹, 결혼한 여성들은 여성동맹 등으로 평생 조직생활을 하고 조직생활의 일부분으로 생활총화를 한다. 생활총화는 각자의 조직에서 각자의 업무와 생활을 반성하고 상호 비판하는 모임으로 학교와 조직에 따라 주 1회, 월 1회, 격일 단위로 이뤄진다고 한다. 김일성·김정일 부자의 유훈이나 당 지침을 얼마나 잘 수행했는지, 조직생활과 활동 성과에 있어서 성공적인 부분과 비판적인 부분을 발표하고 난 뒤 조직 구성원 개개인들이 돌아가며 자아비판과 호상비판(상호비판)을 한다고 한다. 호상비판은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으로 모두가 껄끄러워하는 부분이지만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사전에 양해를 구하거나 아니면 누구나 봐도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여겨지는 조직의 낙오자로 분류되는 사람들에 대해 비판이 집중된다고 한다.

생활총화에 참여하지 않는 경우에는 조직이나 당국으로부터 사상 검토를 받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공개 비판을 받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조직생활과 생활총화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한다고 한다. 물론 최근 들어 장사하는 사람들은 거주지를 이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조직에 돈을 내고 참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조직도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라 오히려 반긴다고 한다. 조직 활동도 돈이 없고 힘없는 사람들만 참여하고 있는 실정이며 조직생활에 꼬박꼬박 참여하면 돈이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창피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생활총화가 끝난 다음엔 서로 어떻게 볼까 하는 것이었다. 상상하기도 어렵지만, 평생을 불특정한 다수도 아닌 같은 조직의 구성원이며 이웃인 대상을 비판하며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될까? 항상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 혹은 비판을 하기 위해 이웃의 행동에 관심을 갖고 감시를 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생활총화의 결과가 각 개인의 성공이나 발전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일이라면 상호 견제와 감시의 수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과연 이들에게 이웃은 어떤 존재일까? 또 통일된 후 상호 비판을 일상적으로 해온 사람들과 타인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결례로 여기며 살아온 사람들이 이웃이 되어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의구심과 우려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물론 이런 의구심과 우려가 타당한 것인지, 정말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통일 과정은 많은 갈등과 균열을 드러내게 될 것이고, 거시적인 제도나 체제 통합보다는 주민들의 생활문화나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갈등이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제도나 경제제도보다는 소소하게 일상에서 부딪히는 갈등들이 더 어렵고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생활총화가 북한 주민의 의식과 생활문화에 미친 영향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먼저 온 통일세대라고 할 수 있는 탈북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탈북민들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들과 소통하기가 통일 준비를 위한 1단계가 돼야 한다. 탈북 여성들과 소통을 통해 각각의 생활문화 속에 내면화돼 있는 차이를 찾아내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한다.